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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6일 토요일

[앨범 소개] 나그네 설음 / 남양의 눈물

 나그네설음 / 남양의 눈물

'설음'은 당시 사용된 문법체계이며, 현제는 '설움'으로 사용한다.


곡 소개

  • 발매일 1940년 2월
  • 제작사 타이헤이
  • 앨범유형 스플릿
  • 앨범번호 8665





수록곡

나그네 설음 / 백년설 / 조경환 / 이재호

남양의 눈물 / 나성려 / 고려성 / 육오명


백년설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나그네 설움>이 들어가 있는 곡이다.일제강점기 시절, 고향을 떠나 떠도는 생활은 나라 잃은 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처 없다. 한이 없다. 한이 서린다. 태양도 없다 등의 표현은 나라 잃은 설움을 잘 보여준다.


백녀설의 너그네 설음



[나그네 설움 가사]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 땅 밟아서 돈지 십 년 너머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엔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가워
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
새벽 별 찬서리가 뼈골에 스미는데
어디로 흘러 거랴 흘러갈쏘냐

나성려 남양의 눈물




나성려

나성려의 본명은 김숙희이며, 출생은 정확하지 않으나 1978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저고리 시스터즈에서 활동했으며 히트곡으로는 <남양의 눈물> <임 찾는 발길> <절연편지> <무명화올시다> <쌍굴뚝 이별> 

[앨범 소개] 산팔자물팔자 / 번지업는주막

 산팔자물팔자 / 번지업는주막


앨범 소개

  • 발매일 1940년 8월 
  • 제작사 타이헤이
  • 앨범유형 독집
  • 앨범번호 GC-3007

백년설

[수록곡]

산팔자 물팔자 / 백년설 / 처녀림 / 이재호

번지 없는 주막 / 백년설 / 처녀림 / 이재호


'번지 업는 주막'에서 '업는'은 오타가 아니라 다시 사용한 한글 사용법으로 '없는'이 아니라 '업는'이었기에 그대로 실었다. 노래를 1939년에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처녀림의 본명은 박영호이다. 고향이 함경남도 원산이었던 박영호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박영호는 금기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의 노래들은 상당부분 개사되어 재발매되었다.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앨범 소개] 부모의은덕가 / 학도가 관학가

 부모의은덕가 / 학도가  관학가


[앨범 소개]

이 앨범은 1923년 발매된 것으로 <부모의 은덕가>와 <학도가> <권학가>가 들어가 있다. 흥미롭게 앨범에는 태극 무늬가 들어가 있다. 한국 최초의 앨범으로 만들어진 창가 형태의 노래이다. 1921년 앨범은 찾을 수 없고, 2913년경 재발매된 앨범은 이경호 소장이 소장하고 있다. 아래의 앨범도 이경호 소장의 것이다.



창가는 트로트가 생기기 직전 일본의 엔카와 서양의 음악들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계몽가이다. 수많은 창가들이 있었지만 앨범으로 남겨진 최초의 창가는 이 앨범에 들어간 <학도가>이다. 노래는 개인이 아닌 합창 형식이며 이름은 '청년회원'으로 되어 있다. 초기의 창가는 대부분 교회에서 만들어졌다. <학도가>도 교회에서 불려진 노래로 보인다.


  • 학도가의 작사 작곡은 김인식으로 되어 있는 곳이 있다.


수록곡


  • 부모의 은덕가 / 청년회원
  • 학도가 관학가(권학가) / 청년회원


학도가 가사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역사의 태동을 들어 보아라

소년은 이로에 학난성하니

일촌 광음도 불가경일세


청산 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광채 나고

낙락 장송 큰 나무도

깎아야만 동량되네


공부하는 청년들아

너의 직분 잊지 마라

새벽 달은 넘어 가고

동천 조일 비쳐 온다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역사의 태동을 들어 보아라

소년은 이로에 학난성하니

일촌 광음도 불가경일세



일제강점기부터 불려온 성경목록가 역시 학도가와 멜로디가 동일하다. 





[앨범 소개] 노래가락 / 사랑의 수건

 노래가락 / 사랑의 수건


[앨범 소개]

발매일 1925년

제작사 일축 와시표


[수록곡]

노래가락 / 길진홍 백목단

사랑의 수건 / 도월색






2023년 2월 20일 월요일

봄 아가씨, 가사, 이난영

<목포의 눈물> 유명한 이난영의 다른 곡이다. 앞면에는 <목포의 눈물>이 있었고, 뒷면에 <봄 아가씨>가 있었다. 봄이 오는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어두웠던 식민지의 삶과 더불어 삶을 즐기려는 양면성이 앨범 양면에 잘 드러난 곡이다.


봄 아가씨

남풍월 작사, 문호월 작곡, 이난영 노래, 1935년 8월 발매





1절

봄 아가씨 가슴에 꽃이 피고 

봄 아가씨 한숨에 달이 지네 

버들피리 소리만 삐삐리 삐리 삐삐리 삐리리 

봄 아가씨 가슴은 싱금싱금 싱금 


2절

봄 아가씨 댕기는 다홍댕기 

봄 아가씨 첫사랑 싹트건만 

시냇물 소리만 졸조졸 졸졸 졸조르 졸졸졸 

봄아가씨 가슴은 생동생동 생동 


3절

봄 아가씨는 당기는 다홍댕기

봄 아가씨 아양한 쏭빗 아양

종달새 노래만 삐리리리 삐리리리

봄 아가씨 가슴은 하늘하늘 하~늘


이후 바뀐 가사

3절

왜 왔느냐 이 봄아 원수의 봄 

피지 마라 저 꽃아 진달래 꽃 

참새들 소리만 삐삐리 삐리 삐삐리 삐리리 

봄아가씨 가슴은 땡똥땡똥 땡동

*3절은 '참새들'은 어떤 곳에서는 '종달새'로 나온다.




고향, 가사, 채동선 작곡

 <고향>은 1936년 채선엽이 작곡한 곡이다. 채동선은 도쿄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베르트라메리 요시코를 사하하여 벨칸토 창법을 배웠다고 한다. 고향은 오빠인 채선엽이 보내준 곡이다. 채동선의 고향은 전라남도 벌교이다.



고향

정지용 작시, 채선엽 작곡, 채동선 노래


[가사]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더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가려나, 가사, 나운영 작곡

가려나, 사랑의 덧없음을 노래하다. 


가려나

김안서 시, 나운영 작곡,


1940년 1월 16일 동아일보 '당선 작곡'으로 발표된 곡이다. 동아일보사가 전국에 작곡노래를 모집한 대상인 셈이다. 실연의 아픔과 공허함을 담은 김안서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곡이다. 당시 나운영의 나이는 고작 17세였다. 아무리 그 시대가 조속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가사]


끝없는 구름 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가없는 바다의 외로운 배처럼
어디로 뜨려나 뜨려나
사랑의 스물은 덧없이 흐르고
앞길은 멀어라 멀어라
기쁨은 빠르고 설움은 끝없어
마음만이 아파라 아파라 아파라 아파라






애국가, 가사, 안익태

 지금은 애국가를 외우지 않기에 잘 모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 다음이 뭐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의 세대는 조회마다 불렀기 대문에 모를 수가 없다. 


애국가 가사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맑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날 사랑하세





안익태는 일제강점기 시절 애국가를 조선의 국격을 올렸다.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에 건너가 도쿄 간다에 있던 세이소쿠 중학 2학년에 편입하고, 도쿄 고등음악학원에 들어가 첼로를 전공한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유학 한다. 


미국에 있을 때 동포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안타까워 직접 애국가를 만들기로 한다. 


애국가의 전반부는 미국에 있을 때, 후반부는 유럽에 있을 때 완성하게 된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재미 동포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선수가 일본대표로 마라톤에 참여해 금메달을 목에 건다. 이때 함께 참석한 이들과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봄이오면, 가사, 김동진 작곡

봄이 오면 사랑이 피고

봄이 오면 <봄이 오면>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 김동진의 또 다른 노래인 <봄이 오면>은 아직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곡이다.


봄이 오면

김동환 작시, 김동진 작곡



[가사]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 가 주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 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 주


놀라운 건 이 노래가 김동진이 숭실 중학 3학년 때 작곡 했다는 것이다. 10대 중반에 작곡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김동진은 1913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숭실 중학, 숭실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 고등음악원에 들어가 공부했다.



내 마음, 가사, 김동진 작곡

독립운동의 마음을 담아 노래하라

 

<가고파>로 유명한 김동진은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 <내 마음>을 작곡하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던 시를 곡을 붙였다. 조국을 사랑하는 이들에의해 점점 사랑을 받게 된 곡이다.


내 마음

김동명 시, 김동진 작곡




[가사]


그대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을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 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간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 가리다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이 노래는 자연의 풍경을 노래하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노래는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하고 한다. 김동명이 독립투사들이 많았던 만주에 살면서 독립에 대한 투지와 식민인의 삶 등으로 살아갔다. 김동명의 시를 늘 마음에 담고 애송했다. 그는 이 시로 노래를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악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산책하던 호숫가의 풍경을 담아 작곡한 것이다. 




가고파, 가사, 김동진 작곡

그리운 고향을 회상하다

가고파는 마신 출신 시인 이은상의 시조에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곡이다. 김동진이 숭실전문 2학년 재학 중에 작곡한 곡으로 당시 19세였다고. 이은상의 시에 감동을 받은 김동진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그때가 1933년이다.


 

[가사]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 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 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다름질하고 
물들면 뱃장에 누어 별헤다 잠들었지 
세상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나 알아보나 

 내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되 안기자 되안겨 

 

 처자들 어미되고 동자들 아비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 없은 몸에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 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니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을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이거나 깨끗이도 깨끗이





고향생각, 가사, 현제명

 현제명 작시 작곡으로 알려진 <고향 생각>은 1923년 미국 유학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며 작곡한 가곡이다. 1931년 <현제명 작곡집>에 수록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 떠돌아야 했던 식민지 백성들의 아픔이 담겨 있다.


[가사]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데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고향 하늘 쳐다보니 별 떨기만 반짝거려
마음 없는 별을 보고 말 전해 무엇 하랴
저 달도 서쪽 산을 다 넘어 가건만
단잠 못 이뤄 애를 쓰니 이 밤을 어찌 해

-현제명 작시 작곡




요즘이야 언제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고향이다. 근대화로 인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이들에게 고향은 어쩌면 낯설고 어색한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를 잃고 떠돌아야 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밤이 깊어 외롭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그리움만 가득하다. 현제명은 이 곡 외에도 많은 곡을 작곡했다.


<산들바람> 정인섭 시, 현제명 작곡

산들바람이 분다 산들 분다
달 밝은 가을밤에
달 밝은 가을밤에
산들바람 분다
아, 너도 가면
이 맘을 어이해
산들바람이 산들 분다
달 밝은 가을밤에
달 밝은 가을밤에
산들바람 분다
아, 꽃이지면

이 맘을 어이해






내 고향을 이별하고, 가사, 안기영

안기영, 삶과 앨범


안기영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인재였다. 하지만그는 교편을 잡고 있던 김현순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당시 큰 화제거리였다. 그는 이미 아내가 있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1925년 11월 일본축음기 상회를 통해 <내 고향을 이별하고>를 남겼다. 1933년 즈음에 <마의태자> <그리운 강남> 등의 가곡을 남겼다.

 

[가사]


내 고향을 리별(이별)하고 타관에 와서

적적한 밤 홀로 안져서(앉아서) 생각을 하니

답답한 마음을 아아 누가 위로해


내 고향 떠나올 제 우리 어머니

문 압해서(앞에서) 내 손 붓(붙)잡고 잘 다녀오라

하시든 말삼(말씀) 아아 귀에 쟁쟁타


정사인 작사 작곡, 안기영 부름 




성불사의 밤, 가사, 홍난파

시대 정신을 일깨운 독립 운동가


성불사의 밤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


 

[가사]

성불사의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댕그런 울린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라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들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2023년 2월 19일 일요일

봄 처녀, 가사, 이은상 시, 홍난파 작곡

 봄 처녀

홍난파는 깨어 있는 음악가였다. <봉선화>가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을 확인한 홍난파는 더 많은 곡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1922년 연악회를 창설하고 독립정신을 담은 노내를 작곡하는 데 힘을 썼다. 1925년 조선 최초의 음악 잡지 <음악계>을 만들어 음악 보급에 앞장섰다. 1929년에는 <조선 동요 100곡>을 출판한다. 1933년에는 이은상의 시조에서 15편을 골라 <조선 가요 작곡집>을 출파한다. <봄 처녀>는 <조선 가요 작곡집>에 들어가 있는 노래다.


[가사]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님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홍난파 <봄 처녀>



1933년 이은상의 시조 중에서 15편을 골라 홍난파가 작곡한 [조선 가요 작곡집] 안에 들어가 있는 곡이다. <봄 처녀> 외에도 , <사공의 노래> <성불사의 밤> 등이 있다.


홍난파 <사공의 노래>



봉선화, 김형준 시, 홍난파 작곡

조선의 처녀, 민중의 저항 정신을 담다


<봉선화>는 삼일운동이 일어나 얼마 지나지 않을 때인 1920년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가곡이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김형준 시, 홍난파 작곡



이 노래는 3.1운동을 계기로 도쿄음악학교를 중퇴하고 귀곡한 난파 홍영후가 작곡을 했다. 사랑하는 고국을 위한 곡이었다. 하지만 아직 작사를 하지 못해 간직하고 있었다. 5년 지난 후 1925년 무렵 양악계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형준이 시를 붙어 노래를 완성한다.


봉선화는 조선의 처녀를 뜻한다. 청초한 조선의 처녀들을 상징하는 붕숭화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여름이 되면 울 밑에 피어나는 봉숭아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을 드린다. 


살짝만 건드려고 가지가 부러지는 약한 꽃이다. 그래서 늘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조용한 곳에 혼자서 피어났다. 꽃이 지고 씨방이 익어 어느 날 툭 터지며 사방으로 씨를 날린다.


예로부터 봉선화는 민중의 저항 정신을 뜻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다. 소박하고 작디작은 행복을 간직한 봉숭아다.


<봉선화> 2절

북풍한설 찬바람에

내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조선의 독립 정신은 담은 봉선화는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 

학도가, 가사,

 학도가란?


학도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열심히 살도록 권하는 내용입니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개신교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서양 음악도 함께 들어오게 됩니다. 선교사들은 초기에 의료 선교에 집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사람들에게 신문물을 전하고, 근대교육을 시켰습니다. 초기 대부분의 학교가 교회나 미션스쿨이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벽상의 괘종을 들어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오니

인생의 백 면 가기 주마 같도다



멜로디는 스코틀랜드 민요 <석별 Auld Lang Syne>를 그대로 가져와 가사만 바꾸어 불렀습니다. 이 멜로디로 수많은 노래들이 만들어 집니다.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성경 목록가도 동일한 멜로디를 사용합니다. 동일한 멜로디로 <철도 창가>가 있습니다. 사실은 당시 대부분의 노래가 이 멜로디를 사용합니다.




한복남, 엽전 열닷냥, 가사

 엽전 열닷냥 엽전 열닷냥 개요 작사 천봉 작곡 한복남 노래 한복남 발표 1955년 이 노래는 1955년 도미도레코드에서 발매된 [엽전열닷냥/오동동타령]에 들어가 있는 곡이다. 발표 당시 두 노래 모두 사랑을 받았지만 황정자의 '오동동 타령...